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와할랄 네루 (문단 편집) == 영국에 대한 태도 == [[인도]]의 독립 운동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인도를 통치한 마지막 영국인"이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도인과 영국인의 중간쯤 위치에 놓은 친영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인도에서는 입은 옷만 빼곤 전부 영국인인 사람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담으로 네루 뿐만 아니라 다른 인도의 엘리트[* 대부분이 [[브라만]]이다.]들도 [[영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는데, 독립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도 상류층은 자기 집의 실내 양식으로 영국식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렴 진화|정작 동시대 영국에서는 인도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매스미디어에 나올 때 입고 나오는 다양한 전통 복장은 평소 복장이 아니라 일부러 입고 나온 정치적 프로파간다인 경우도 많다는데, 어찌보면 일종의 민족적 배신 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국의 의회 정치 문화가 상류층에 내면화된 덕분에 높은 부패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나 [[언론]]의 자유는 그럭저럭 잘 지켜지고 있다. 네루의 (한국식으로 치면 강남 좌파 비슷한) 엘리트주의 성향과 영국 제국주의의 유산에 대한 미묘한 감정은 한편으론 여러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인도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고평가 받는게 일반적이나, 장기적으로 볼때 정치적 약점이 되기도 했다. 한 예로 2010년대 중반 이후 장기집권하던 인도 국민회의를 선거에서 제껴버리고 급부상한 [[나렌드라 모디]]와 [[인도 인민당]]이 국민회의를 디스할 때 강조하는 전형적인 레토릭이, 인도국민회의는 네루 가문의 족벌 체제이며, 네루는 무늬만 인도인인 '세속주의에 타락한(?)' 영국인, 엘리트주의자였다는 주장이다. 전자, 즉 네루 가문의 정치적 족벌화는 딱히 틀린 말이 아니지만 자기 딸인 인디라 대도 아니고 3대, 4대, 5대까지 족벌을 해먹는걸 네루가 책임지기는 힘들고, 후자는 순 억지다. 네루가 사상적으로나 개인적인 기호로나 여러 면에서 친영적인 모습을 보인건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의 국력을 만든 선진 문물, 제도 등을 본받아 인도도 독립을 이루고 힘을 키우자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민족개조론'적인 자세였으며, 네루는 끝까지 영국발 문화, 사상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에는 타협하지 않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 운동가 투사였다. 네루는 세계사 편력에서 영국의 민주주의나 학문적 풍토, 본인이 사귄 양심적이고 개방적인 영국인들에 대해선 입이 마르게 칭찬하지만 영국의 제국주의까지 긍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중정치, 특히 자극적인 역사 왜곡에 기반한 선동은 동서고금 불문하고 합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드므로, 현대 인도내 네루 안티 진영에선 '위선자, 친영파, 엘리트주의자'란 인식도 있었다.[* 힌두 극단주의자들의 진짜 표적은 원한을 갚기엔 국력차도 크고 결정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영국이 아니라, 인도 안에서 영국보다 훨씬 오랫동안 힌두교인 위에서 지배층 노릇하던 무굴 제국의 상류층 출신 무슬림들이었기 때문에 독립 후 이들을 포용하고자 했던 간디도 암살했다. 그럼에도 네루가 간디처럼 파키스탄의 독립을 막지 않고, 그럼에도 이주하지 않고 남아있는 약 3,000만명의 본토 무슬림을 포용한 것에 대해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는 것이 힌두 극단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게 네루의 친영파 프레임은 일종의 포장에 불과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